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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은...

nation 2008/08/19 09:51
< 스부꽌지: 나와 무슨 상관이냐·事不關己 >
하루 12시간 일해도 맞벌이해야 세식구 살림 꾸려
고졸자 임금 대졸의 절반 "그래도 고향보단 나아"
교통비·식대는 저렴 "베이징 시민인게 자랑스러워"

베이징의 겉모습은 팔등신 미인이다. 쭉쭉 뻗은 도로와 거미줄 처럼 얽힌 지하철 노선은 매혹적인 S라인이다. 올림픽을 위해 431억달러(44조5,000억원)를 쏟아 부은 성형수술은 대성공작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지독한 먼지와 강풍 탓에 누런 흙빛 일색이던 얼굴도 도심 곳곳에 조성된 잔디밭과 공원 덕에 녹조와 홍조를 띄기 시작했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2008년 베이징의 현주소다. 지난 8일 열린 올림픽 개막식은 이런 '뒤집어진' 베이징을 알리는 '작은 무대'에 불과했지만 전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호주의 한 언론은 아예 '세계 8대기적'이라고 썼다. 중국은 이런 찬사에 흥분했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선포했다.

하지만 베이징 한 복판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뜻밖에도 "쓰부??지" (事不關己)였다. 주변 환경이 조금 나아졌을 뿐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이었다.

택시기사 지지엔먼(齊建文ㆍ36)씨는 하루 12시간을 꼬박 운전대를 잡고 지낸다. 동료와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하루걸러 밤낮을 바꿔가면서 일하는 지씨는 아침 출근땐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낮 12시쯤 점심을 먹고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10원짜리 메뉴로 때운다. 이렇게 일해서 받는 월급이 3,000위안. 베이징에서 한달 3,000위안으로 가정을 꾸리는 건 쉽지 않다. 맞벌이 하는 아내의 월급 2,000위안을 보태야 5,000위안(75만원)을 손에 쥔다. 지씨는 "이중 집세 2,000위안을 빼고 남는 3,000위안으로 초등학생 아들 뒷바라지 하면서 세 식구의 한달 생활비로 겨우 꾸려간다"고 말했다.

궈진(郭普ㆍ22)씨는 중국 이동통신(CMCC) 직원이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새내기다. 한달 월급이 2,500위안으로 대졸 평균 초임수준이라는 궈씨는 "부모님과 함께 베이징 시내에 살고 있어 집세로 돈이 새지 않아, 매달 1,000위안을 저축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패스트 푸드점에서 서빙을 담당하는 왕옌페이(王延飛ㆍ20)씨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경우다. 그의 한달 수입은 1,200위안. 대졸자의 절반수준이다. 회사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동료 5명과 함께 기거한다고 말했다. 한달 아파트 임대료는 3,000위안. 다행히 회사에서 집세는 대신 내줘,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왕씨는 "일반 식당 종업원 평균임금이 1,000위안인데 비해 자기는 200위안을 더 받고 있다"며 "고향의 부모님 벌이(800위안)보다 훨씬 많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영화 1편 보는데 60위안 넘게 들어 문화생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교에서 경비로 일하는 취루(瞿露ㆍ19)씨 역시 한달 수입이 1,200위안이다. 취씨는 "이중 절반을 고향의 부모님에게 보낸다"며 "학교 기숙사에서 숙식을 제공해줘 먹고 자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자, 한결같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뜻인 메이샹(沒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임금의 그늘속에 갇혀 뾰족한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올림픽은 '한여름 밤의 꿈'인 듯 했다. 양 어깨에는 고단함이 배여 있었고 삶은 지쳐 보였다.

하지만 저마다 얼굴은 밝아 보였고 베이징 시민이란걸 자랑스러워 했다. 자신의 월급이 5,000위안 안팎에 불과하다고 '고백'한 칭화대의 한 교수는 "저렴한 교통비와 음식값 등 베이징 시가 그나마 시민들의 기본 생활을 보장해, 사회가 안정돼 있다"며 "연소득 2,500~6,000달러까지 폭 넓게 분포해 있는 1억6,000만명에 달하는 이들 보통사람들이 중국을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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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현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그치?

무슬림.

nation 2008/08/07 11:42

하마스 [HAMAS]

이슬람 저항운동단체로, 아마드 야신(Ahmad Yasin)이 1987년 말에 창설하였다. 이 조직은 이스라엘요르단강 서안(西)과 가자지구를 계속 통치하는데 저항한 ‘인티파다(Intifada)’라는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시기에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대신할 만한 이슬람 단체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하마스는 ‘용기’라는 의미로, 이슬람 수니파()의 원리주의를 내세우는 조직체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해방 및 이슬람 교리를 원리원칙대로 받드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이다. 기본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간의 평화협상을 반대하고, 이를 위한 테러활동을 벌인다.

이들의 조직은 정치·군사로 이원화되어 있다. 정치조직은 3개의 위원회로 된 중앙지도부 아래 활동분야별로 4개의 하위조직이 있다. 웨스트뱅크 지역에 3명의 지역책임자를 두고 있으며, 가자지구에 1명의 책임자를 두고 있다. 또 각 지역마다 지역 책임자 아래 세분화된 세포조직체제를 갖추고 있다. 군사조직으로는 ‘에즈 에딘 알 카삼(Ezz Eddin al-Qassam)’을 구심점으로 모든 테러활동을 계획하고 자행한다.

해외에 망명한 팔레스타인인(), 이란을 비롯한 여러 아랍국가의 후원자 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영국·독일·벨기에·네덜란드 등 외국에도 자금조달망을 갖추고 있다

하마스 고위 지도자 아들, 기독교로 개종
“이슬람은 거대한 거짓말… 원수 사랑하란 구절에 충격”
[크리스천투데이] 2008년 08월 07일
 
하마스 고위 지도자의 아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가 최근 보도했다.

하마스 창설에 가담한 지도자 중 한 명인 셰이크 하산 유세프의 아들인 마삽 유세프는 4년 전 개종을 결심했지만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숨겨왔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개종을 알렸다.

올해 30살의 마삽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8살 때 이스라엘에서 호기심에 기독교에 관한 설명을 들으러 갔던 것이 처음으로 기독교를 접하는 기회가 됐다는 그는 자신이 그날 들은 내용을 잊을 수가 없었고, 매일 성경을 비밀스럽게 읽었다고 했다.

“‘원수를 사랑하라’와 같은 구절은 특히 내게 충격을 줬다”고 유세프는 회상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나는 여전히 무슬림이었고 무슬림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일 나는 스스로를 ‘위대한 신자’들로 여기는 사람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는 것을 봤다”고 밝혔다.

이슬람을 가리켜 “거대한 거짓말”이라고 한 그는 “소위 이슬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보다 무함마드를 더 숭배하고, 이슬람의 이름으로 죄 없는 이들을 죽이고, 아내들을 때리고 하나님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며 “나는 그들에게 천국으로의 유일한 길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예수님뿐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현대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이슬람의 진실이 전 세계에서 드러나고 있으며, 따라서 이슬람의 존속 또한 어려워질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마삽은 “나도 내 삶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걸 안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이 큰 위험을 무릅쓰게 했을까. “누가 과연 이슬람 극단주의에서 자라난 하마스의 아들이 그것에 반대하고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는 “과장이 아니라, 이 인터뷰는 많은 사람들이 (진실에) 눈 뜰 수 있게 해 줄 것이고, 이슬람을 그 뿌리부터 흔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들에게 이슬람과 기독교의 진실을 알리기 원한다”며 “그들을 이슬람이란 감옥의 어둠으로부터 이끌어내길 바라고, 이를 통해 그들이 중동의 갈등 또한 풀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마삽은 그의 가족들, 특히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는 하마스에 대해 “눈이 멀었고 사단의 힘에 이끌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고 단호하게 비판했지만, 아버지와 같은 지도부 인사가 변화됨으로써 하마스 전체가 내부에서부터 변화될 수 있기를 원한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마스 고위 지도자의 아들로서의 생활을 버리고 미국에 온 마삽은 낯선 땅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도 교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이름으로 ‘조셉(Joseph)’을 선택했다는 그는 언젠가 자신의 신앙의 여정과 중동 갈등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나라가 임한 그 때 나는 내 고향 팔레스타인,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손현정 기자 hjson@chtoday.co.kr
           "하나님은..우리 기도..들으셔..듣는것만 하는게 아니라..듣고 움직이셔.."